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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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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배우 겸 샹송 가수이자 댄서, 미용사, 방송인이다. 예명인 이브 몽땅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이브 계단으로 올라와'란 뜻으로 부른 이름이다.
명확히 밝혀진 조상은 이탈리아인이다.[3] [4]
프랑스 공산당원이였으나, 출당당했다.
2. 상세[편집]
이브 몽땅은 몬섬마노 테르메에서 빗자루 제조사인 아버지 조반니 리바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지오세피나 시모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공산주의 신념을 강하게 지녔다. 몽땅의 가족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 때문에 1923년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젊었을 때 누나의 미용실에서 일했다, 나중에는 부두에서 일했다. 그는 음악당 가수로 연예계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1944년에 파리에서 에디트 피아프와 만나게 되었고 조용히 연인사이로 발전해 갔다. 1946년 몽땅의 재능이 그를 가리고 있다고 판단한 에디트의 주도 하에 둘이 헤어졌다. 이후 이브는 가수와 배우 활동을 하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미국에도 진출하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였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 로런 버콜, 잉그리드 버그만, 매럴린 먼로 등 많은 유명인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영화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쯤인 1986년에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마농의 샘>에 출연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과 호평 둘 다 성공했다. 1991년 11월 9일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내였던 시몬 시뇨레 곁에 묻혔다.
3. 사생활[편집]
1949년 그는 시몬 시뇨레와 사랑에 빠졌으며 1951년 결혼했다. 그러던 중 1960년 마릴린 먼로와 <사랑을 합시다>를 촬영하다가 제목처럼 사랑에 빠졌고 둘이 불륜관계를 맺었다. 시몬은 그럼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녀가 1985년 췌장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4. 여담[편집]
- 셜리 맥클레인이 몽땅과 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4.1. 영화[편집]
5. 곡[편집]
- Neige Sur La Ville
- Quelqu'un
- Sanguine, Joli Fruit
- Batting Joe
- Bella Ciao
- La Bicyclette
- Le Télégramme
- En Sortant De L'école
- Planter Café
- Ne Rêvez Pas
- Le Temps Des Cerises
- Gilet Raye
- Actualites
- Les Saltimbanques
- La Ville Morte
- Car Je T'aime
- Saint-Paul De Vence
- Faubourg Saint Martin
- Les Feuilles Mortes[5]
[1] 1923년 프랑스로 이민 온 후 뮤직홀에서 가수로 일했기에 학력 전무.[2] "Yves Montand", nndb.com[3] 출처: EthniCelebs Yves Montand.[4]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잡자 이브 몽탕의 아버지이자 열혈 공산주의자였던 조반니 리비는 1923년 두 살 배기 아들 이브 몽탕을 데리고 프랑스 마르세유로 이주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hotissue/article/421/0006435028?cid=1086151 [5] 우리나라에선 '고엽'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하다.